오늘 감상해 볼 도서는 최진영 님의 소설
구의 증명
입니다.
표지 뒷면부터 알 수 있듯이 사람을 먹는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소설이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거부감이 심하신 분들은 저와 같이 줄거리와 명대사만 즐겨주시고 책을 정독하시는 것은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추천드립니다.
물론 당연히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의 식인이지, 인육을 먹는 것에 대한 내용의 소설은 아님을 분명히 밝혀드립니다.
소설 개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소설 '구의 증명'은 기본적으로 구와 담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두 주인공의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온 사랑과 현실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조금 인물 설명을 드리면 구는 남자이며 부모님이 빚을 크게 진 아이였고 담은 부모 없이 이모와 함께 자란 여자아이입니다.
소설을 읽으실 때 까만 동그라미는 구의 입장으로서의 이야기, 빈 동그라미는 담의 입장으로서의 이야기라고 보고 스토리를 이해하시면 좀 더 수월하실 겁니다. 두 주인공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과 마주하게 되는 사건들로 뼈대를 이루고 있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이별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매력이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됩니다.
시작
소설은 담의 독백으로 문을 여는데,
"천 년 후 사람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으로 운을 뗍니다. 존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보통 천 년 후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기에 매력적인 첫 소절입니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의미를 이해할 순 없었고,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라는 말까지 들었을 때 진정한 의미가 전해집니다.
글만 읽었을 땐 무슨 창피한 일이라도 있어 천 년 후 읽었으면 한다는 내용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천 년 후에 읽길 바란다는 건 아마도 그만큼 오래 기억됨으로써 본인이 그 사람의 마음에 오랫동안 살아있다는 생각을 내포하는 셈이라고 해석됩니다. (개인적 해석)
내용을 알고 읽게 되면 벌써부터 애절합니다...
중간
소설의 중반부터는 구와 담이 주변 환경이나 외적인 요인으로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멀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군대를 가기도 하고 학업이나 진로, 가족이나 성장하면서 새로 만난 인물들에 영향받는 사건들이 생겨납니다.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직접적인 사건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구와 담이 성숙해지는 과정이자 서로의 필연성을 깨닫는 부분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후반
소설의 후반부로 가면 부모님의 빚을 떠안고 힘들어하는 구와 그를 믿어주는 담의 처절한 사랑을 보여주는데 결국 구가 죽게 되고 담은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구를 먹게 됩니다. 구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無)의 상태로 돌리지 않고 싶었던 걸까요.
그리고 구의 명대사가 나오죠.
'언젠가 네가 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천 년토록 살아남아 그 시간만큼 너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이미 죽었으니까.'
'천만년 만만년도 죽지 않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
직관적으로 이해 가능한 문장이지만 이미 죽어버린 구가 육체적 한계가 없으니 너를 가능한 한 오래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표현하는 게 가슴이 아픕니다. 미숙하지만 순수하고 진실된 사랑이 사람을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문장이었습니다.
최고의 명대사
최고의 명대사를 하나 꼽자면 단연 이 문장을 고를 정도로 마음을 울린 대사가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인데요. 가장 파괴적이면서도 그 의미가 잘 전달돼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왜 굳이 사람을 먹는 방식으로 애절한 사랑을 표현하고자 했을까?에 대해 고민해 봤는데 위의 문장들을 읽자마자 바로 이해가 되더군요. 우리가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요? 제 생각에는 잊지 않는 것,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리하면, 담은 구를 먹음으로써 구와 하나가 되고 본인이 죽어야 구가 죽을 수 있게 만들고 싶었을 겁니다. 구가 죽는 모습을 보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었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구를 따라 죽는 것이 아니라 구가 본인을 따라 죽게 만들고 본인은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세상을 살아나가기로 마음먹었겠죠. 구를 기억하면서 본인이 살아가는 것 만이 구를 죽이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에 부딪혀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순수한 두 사람의 이야기. 조금은 구의 증명이라는 책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 글이 도움이 되셨길 바라면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